









은평구립도서관은 석양을 향한 나의 집착과도 같은 몽상으로 부터 비롯된 것이며, 나는 이곳에 석양이 주는 그 황홀 하면서도 신비한 빛을 위한 한편의 서사시를 쓰듯 터를 고르고 벽과 기둥을 세우고 단을 만들어 나갔다. 이리하여 이곳은 신화가 상실된 시대에 다시 신화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한 우매한 인간의 한결같은 발걸음과 염원을 담은 석양의 신전에 다름 아니다.

88서울올림픽 개최는 오천년 역사를 이어온 한민족의 장대한 꿈과 기상이 이땅에 민주화를 이루고 하늘로 웅비하는 일이요. 세계인이 한자리에 모여 화해와 평화의 정신을 고취하고 냉전해소의 전주곡을 울린 세계사적 의의를 갖는 기념비적인 축제였다. 그 세계인의 평화 염원을 날개에 담아 부지 중앙의 결절부에 배치하고 문(門)의 형상을 취했다. 호수 너머 몽촌토성이 병풍처럼 두른 중심의 너른 마당은 미래를 위해 활짝 열어 비워 둔채, 그곳에 이제 평화의 노래가 알알이 차 오리니...

오래전에 동료 건축가들이 모여 컨트리클럽 그늘집을 함께 설계했다. 설계 주문사항은 "설치 조형물 같은 폴리(FOLLEY)" 였다. 준공때를 위해 작은 퍼포먼스도 미리 기획해 두었건만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때 적은 작업노트의 메모. 이젠 아련하다. 그러나 기억의 창고에서 하얀 먼지속에 파묻혀 있지만 아직도 그 눈동자는 꿈꾸고 있나니. “꿈꾸는 눈은 보지 않고 다만 투영 시킬뿐/ 숲너머 잠든 물에 종일 구름이 가도/ 고요히 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대지의 눈.”

밤하늘에 무수히 떠있는 붉은 네온 십자가를 보고 있노라면 도시가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거대한 무덤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 였을까? 이 붉은 네온 십자가의 등장은, 그러나 이곳에도 네온 십자가는 휘황했다. 그래서 혼자 조용히 기다린 공간은 옥상의 하늘기도소 였다. 그곳은 하늘만 보이는, 천공으로 열려있는 고요의 샘. 그곳에 시원의 우주로부터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어오고, 별이 소식을 전할 것이다. 비록 사람들이 그곳을 자주 찾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집의 영혼은 그곳에 머무를 것이다. 꾸밈새는 작고 보잘것 없지만 그 해맑은 고요함으로...

흑빛공부방은 누구보다 빛에 민감했던 컴컴한 굴에서 탄을 캐던 광부들과 그 아이들의 영혼이 빚은 집이다. 12개의 천창은 이곳이 희망의 땅으로 부활하기를 바라는 희원의 상징이며 중심의 덱크는 별의 신화를 듣는 밤하늘을 유영하는 갑판이다. 아이들아 하늘을 바라보라! 여기서 보낸 시간들이 동심의 잠재의식 속에 화석처럼 남아 언젠가 상상력의 길을 따라 높고 낮은 풍금 소리로 변환돼 울려 나올 것이다. 이 집의 비밀이 무엇인지를. 밤하늘의 별에게 전하리. 태백준령의 침묵과 신비를 담아 노래하는 뮤즈의 은유라는 것을.

옥상에 잔디와 꽃을 심어 모두 장애없이 이곳에 올라와 쉴 수 있도록 엘레베이터를 설치했다.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래서 건축법상 1개의 층이 추가 되었다. 당연히 취해야할 일이었지만 이것이 이집의 “비움” 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경제적 이해 타산으로 집이 집이기를 포기한 건물이 얼마나 많은가? 남향은 아파트로 가로 막혀 북향으로 밖에 열릴 수 없는 후미진 이곳에 장애인을 위한 예술공간을 짓고 그 지하에 다목적 공연장으로 쓰이는 등불교회가 들어가 있다. 오르내리는 지하 계단이 숨차지만 은총의 계단이 되었으면...

9살 때 새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곡조문”이 범상치 않았던 조선중기의 문인 송순은 “10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으니, 반간은 청풍이요 반간은 명월이라, 강산은 들일 데가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라고 몰아일체의 경지를 노래하였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그중 첫 구절에 쏠린다. 바로 경영하고 축조하는 건축의 영조(營造) 정신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영이란 바로 자신을 다스리고 세상을 다스려 삼간에 초탈한 선비정신을 담은 것을 말함이요. 짓고난후 그 공간과 일체하는 삶을 경작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리라.

누군가는 자신을 키운건 7할이 바람이라고 했지만 나를 키운건 골목과 하늘이다. 골목에서 하루종일 뛰놀았으며, 어쩌다 지붕에라도 올라 갈적엔 흘러가는 구름에 홀려 한참 정신을 팔다가 내려왔고 밤이 되면 평상위에서 별을 보다가 잠들었다. 나이 들어 그곳에 다시 가보니 그 골목이 양팔을 벌리면 닿을만큼 좁았다. 그것이 왜그리 넓어 보였던지! 어릴적 자신이 살던 골목과 옛집을 찾아가 보아라. 없어지지 않고 아직 남아 있다면 그곳의 흔적과 아무렇게나 핀 꽃들이 그때의 기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을 터이니. 그곳에 두고온 꿈과 사랑과 인생을....

나는 걷고 있었다./ 익숙한 몸짓으로 늘 다니던 산책길을./ 그러나 참 이상도 하지/ 그날은 나무도, 길도, 바람소리도/ 처음 만나는 낯선 풍경이었다./ 나는 말 못하는 이방인처럼 산책길을 헤매다가, 헤매다가,/ 숲 그늘에 묻혀있는 작은 문을 발견 하였다./ 그 문을 열고 나오니/ 아!그곳엔 눈부신 태양/ 하얀 구름이 푸른 바다에 떠 있고/ 등대처럼 나를 인도하는 유년시절의 키큰 프라타나스 한 그루./ 나는 그곳을 향해 힘차게 걸어 갔다./ 그러나 아직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였다./ 그곳을 향해 떠난 내가/ 그후, 어디로 갔는지?/ 사실은 나도 행방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M.A.C
우주에 보내는 메시지